500년의 시간을 살아온 고택, 대문도 남다르네

대문이 남다르다. 여느 집과 달리 당당해 보인다. 대문은 3칸짜리 솟을대문이다. 처마에 정려가 걸려 있다. 1713년 숙종 때, 이 집에 살던 이상호의 지극한 효성을 기려 나라에서 내린 표창이다. 효심을 인정받은 집이다. 가문의 기품을 더해준다.
전주이씨 양도공파 종갓집이다. 이효상이 정착한 뒤 무려 500여 년간 후손들이 대를 이어 살고 있다. 이효상은 이성계의 조카이자 개국공신인 이천우의 증손이다. 500년 넘는 역사를 품은 고택이다. 지금은 이 집에 사는 종손의 이름을 따 '이규헌 가옥'으로 불린다.
이규헌(李奎憲)은 수묵담채를 중심으로 산수화, 화조화 등을 그리는 화가다.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과 종가의 멋을 현대적 필치로 표현한다.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등의 경력을 지닌 국전 출신이다. 신체(청각) 장애의 한계를 이겨낸 화가이기도 하다.
이규헌 가옥은 임진왜란 때 의병의 거점으로도 쓰였다. 의병을 일으키고, 영광 수성도별장(守城都別將)을 지낸 이응종이 이 집을 의병청으로 삼고 수성 대책을 논의했다. 일본의 침략에 맞선 지역의 작전본부였던 셈이다. 이규헌 가옥이 이응종의 생가이다.
집도 격이 다르다. 그저 그런 옛날 기와집이 아니다. 솟을대문과 내삼문, 사랑채, 안채, 사당, 호지집 등으로 이뤄져 있다. 당시 양반들의 주거 형태가 고스란히 배어있다. 무엇보다 남성 공간인 사랑채와 여성 공간인 안채가 완벽하게 나뉘어 있다.
대문을 들어가면 오른편으로 사랑채 상선당(相善堂)이 자리하고 있다. 건축물이 위엄있고 반듯해 보인다. 마치 '나 이런 사람이야~' 하며 으스대는 것 같다. 사랑채는 손님을 맞이하고 학문을 논하던 공간이다. 상량문에 적힌 기록으로 볼 때 1895년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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