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졸업 앞두고 변한 누나, 동생은 카메라를 들었다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983년, 24살 누나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소란을 일으킨다. 촉망받던 의대생, 동생에게 다정하던 모습은 그날 이후 사라졌다. 하지만 부모님은 치료 대신 딸을 집에서 '보호'하기로 한다. '불상사'를 막고자 현관문에는 자물쇠와 쇠사슬이 채워진다. 동생은 집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쓴 결과 1992년 독립한다.
하지만 남은 가족이 마음에 밟힌다. 영화를 배운 뒤 2001년, 카메라를 들고 가족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생존을 위해 탈출했던 곳으로,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본가로 돌아간 것. 촬영은 20년간 이어진다. 고통스러운 현실을 마주하며 동생은 누나에게, 부모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어떻게 해야 했을까?"라고 거듭 질문한다.
어느 가족의 기구한 연대기
보기 전에 반드시 심호흡해야 하는 영화가 종종 있다. 마음의 각오를 다지고 세수라도 한 번 더 한 다음 자세를 정돈하고 봐야만 할 것만 같은 그런 작품들. <어떻게 해야 했을까?>의 간략한 줄거리만 봐도 딱 그런 느낌이 왔다. 영화 내용 몇 줄만 대강 봐도 누구나 그럴 테다.
마침내 영화가 끝났다. 예상은 어느 정도 했을지언정 마지막까지 버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끝나자마자 긴 한숨을 내쉬며 제목이 던지는 질문을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 한 사람의 인생, 한 가족의 운명이 고스란히 퇴적된 묵직한 사진첩을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훑어본다는 건 절대 만만한 일이 아니듯 이 작품 또한 그랬다.
영화에는 거의 40년에 달하는 가족의 역사가 응축되어 있었다. 본격적으로 감독이 가족을 촬영한 건 2001년이지만, 가족에게서 제공된 부모의 과거와 누나의 성장기 사진들부터 간헐적으로 기록한 내용도 상당한 분량이다. 목적의식을 갖고 기록 작업에 돌입한 게 그때부터라는 것뿐. 따라서 그야말로 한 가족의 대하드라마를 바로 곁에서 목격하는 기분이다.
이야기를 크게 나누면 (1) 간략한 과거 가족사가 소개되는 도입부, (2) 1983년 누나의 조현병 발발부터 1992년 (훗날 영화의 감독이 될) 동생의 독립 후 다시금 카메라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과정, (3) 2001년부터 정기적으로 촬영을 이어가는 부분으로 구성된다. 물론 주요 무대는 20년에 걸쳐 기록된 세 번째 분량이다. 매년 꼬박 굵직한 가족의 상황과 변화가 소개되는 건 물론 세월이 지나며 주인공인 누나는 물론 다른 이들의 결말도 드러나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했을까?
감독은 단순히 전공을 살려 카메라를 든 게 아니다. 가족을 소재나 배경으로 영화를 만드는 경우는 허다하지만, 이 경우는 차원이 다르다. 오히려 가장 회피하고픈 지점을 고통스럽게 버텨낸 데 가깝다. 그는 자신의 가족이 경험한 맨정신으론 도저히 참기 힘든 고통의 세월이 그대로 묻히길 바라지 않았고, 어떤 형태로 활용되건 그것을 남기는 게 옳은 일이라 판단했다. '실패'에 가까운 수십 년 동안의 세월을 굳이 타인에게 공개하려는 것은 보통 결심이 아니다.
보는 이로서도 2001년부터 본격적으로 카메라에 담긴 가족 내력은 감당하기 어려운데. 화면 속 가족은 대체 어떻게 살았나 싶을 지경이다. 대개 조현병에 걸린 누나 상황에 관한 전문가의 진단과 학문적 해석이 등장하게 마련인데, 이 영화는 독특하게 그런 전형성이 과감히 생략된다. 관객이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최소한의 정보 제공에 그칠 뿐, 대부분 분량은 철저히 한 명의 당사자를 넘어 가족 전체가 추락한 채 헤어 나오지 못했던 긴 세월을 옮긴다.
감독은 그저 소재로서 자신의 누나와 가족을 기록하지 않았다. 공동체 일원으로서 한때 뛰쳐나갔던 가족의 (마치 저주받은) 운명을 회피하지 않고 어떻게든 해결하려는 도전의 일환으로 9년 만에 귀환한 셈. 그렇게 단단히 각오한 상황이기에 관찰에 그치지 않고 치열하게 사태의 원인과 현황을 치열한 대화 속에서 입체적으로 드러내려 애쓴다. 때론 부모에게 상처를 입힐 걸 감수하며 공세적인 도발을 던지거나 심문하듯 본인이 품은 의문을 집요하게 몰아붙인다.
감정 이입과 공감 능력이 뛰어난 이들일수록 그 때문에 중간쯤 되면 화면을 응시하는 것조차 숨 가쁠 지경이다. 하지만 보는 이가 투정 부릴 상황이 아니다. 언성이 크게 올라가진 않더라도 대화 가운데, 심지어 침묵 속에서도 가시로 찔리듯, 상처를 억지로 후비듯 감정이 전이되며 심리적 압박 수위가 사정없이 증폭되는 게 느껴지기 때문. 본격 촬영 개시 때 이미 18년을 넘긴 누나의 조현병은 딸을 돌보던 노부부에게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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