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도비에서 동상까지, 대구의 동학 유적을 찾아서

지난 25일 '대구 10대 독립운동길' 첫 번째 '동학혁명의 길' 답사 여행에 참가했다. 동학과 관련해 제일 먼저 방문할 곳은 시내 중심부에 2017년 건립된 '최제우 순도비'이다.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가 순도한(처형된) 현장에서 20미터쯤 떨어진 곳에 세워졌다. 대구지하철 1호선과 2호선이 교차하는 반월당 현대백화점 출구 인도에 있다.
최제우 순도비를 읽으며
순도비의 핵심 내용은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 선생은 인내천(사람이 곧 하늘이다)과 시천주(하늘이 사람 안에 있으니 사람을 섬기라) 사상으로 세상을 구제하려 했지만 대선사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위정자들은 그를 사도난정(잘못된 철학으로 올바른 성리학의 사회를 어지럽힌다)의 죄로 처형하였다' 쯤으로 요약될 수 있다.
순도비 맨 위에 붉은 원형의 '궁을'이 눈길을 끈다. 궁을은 최제우가 1860년 득도할 때 한울님으로부터 받은 부적(궁을영부)을 제3대 교주 손병희가 한자식으로 상징화한 것이다. 순도비 위로 달구벌대로 건너편의 관덕정이 보인다. 관덕정을 최제우 순도 장소로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최제우가 죽은 곳은 관덕당이고, 관덕정은 순교자들을 기려 천주교 재단이 건립한 건물이다. 천주교 순교자들도 최제우가 순도한 관덕당 뜰에서 목숨을 잃었기 때문에 사형 현장과 가까운 언덕에 관덕정을 세웠을 뿐이다.
이 내용은 순도비에서 20미터 떨어진 동아쇼핑 지하 주차장 출구 앞 '관덕당 옛터' 안내판에도 나온다. 순도비를 본 뒤 '관덕당 옛터'로 이동해서 안내판을 읽어보면 "현재의 관덕정은 1990년 천주교 순교기념관으로 건립된 것이다"라는 해설이 맨 끝 문장을 장식하고 있다. 다만 안내판을 보는 순간 씁쓸한 느낌이 일어났다. 표면이 거북등처럼 갈라져 있어 글자를 읽으려면 판독에 들어가야 하는 수준이었다.
안내판은 "동학 창시자 최제우가 1864년 대구읍성의 남문 앞 개울가에 있는 관덕당 뜰에서 참형되었다"는 <천도교 창건사(1933년 간행)>를 인용하고 있다. 참형은 목이 잘렸다는 뜻이고, 개울은 대구천을 가리킨다. 대구 앞산에서 내려온 대구천은 이곳과 달성토성 앞을 거쳐 금호강으로 유입되었다.
묵념을 하고 교남YMCA(교남Y)건물로 이동한다. 약전골목 안에 있는 교남Y 건물은 기독교 관련 유적이다. 1919년 3월 8일 대구만세운동 주도 인물의 대부분이 이 단체 지도부였다. 교남Y 바로 앞 제일교회의 이만집 목사도 서문시장 독립선언 때 만세삼창을 했던 독립지사이다.
교남Y를 답사한 것은 신간회 대구지회 간사였던 신상태 독립지사가 천도교 대구대교구 서기였기 때문이다. 당시 국내 최대 민족운동 결사였던 좌우 합작 단체 신간회의 대구지회는 이곳 교남Y에서 주로 활동했다. 신상태 지사는 1915년 2월 28일 대구 앞산 안일사에서 창립된 조선국권회복단 단원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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