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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크리스틴 선 "16.6m 서울박스에 도전…내 한계 시험하고 싶었다"(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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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벽도, 바닥도, 유리도 모두 사용할 수 있나요?"

농인(Deaf) 작가 김 크리스틴 선(46)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서울박스'를 처음 본 순간 압도됐다. 한계를 시험하고 싶다는 생각에 공간 전체를 하나의 캔버스로 구상했다.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그는 한국계 미국인 사운드아티스트로 알려져 있다. 드로잉과 벽화, 퍼포먼스, 영상, 설치를 넘나들며 언어와 번역, 접근성, 권력의 구조를 탐구해 왔다. 지난해 영국 현대미술 전문지 아트리뷰(ArtReview)가 발표한 '파워 100'에서 34위에 선정됐으며, 휘트니미술관, 모리미술관, 광주비엔날레 등에서 작품을 선보이며 국제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30일 공개된 신작 '완고한 바위, 무모한 싸움들(Against the Rock)'은 거대한 드로잉과 움직이는 영상, 수어가 하나의 공간 안에서 만나는 장소특정적(site-specific) 설치 작업이다.

검은 선은 벽과 바닥, 유리를 가로질러 이어지고, 중앙의 세로 8.1m, 가로 5.4m 곡면 OLED 스크린에서는 문장과 수어, 애니메이션이 끊임없이 펼쳐진다.

높이 16.6m의 서울박스를 통째로 활용한 이번 작업은 작가에게도 가장 큰 도전이었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과 LG전자가 공동 추진하는 'MMCA×LG OLED 시리즈'의 두 번째 프로젝트다. 지난해 첫 번째 작가 추수가 디지털 세대의 감수성과 동시대 젠더 담론을 대형 설치 작업으로 선보인 데 이어, 올해는 김 크리스틴 선이 언어와 소통, 접근성의 문제를 서울박스 전체로 확장했다.

밝은 에너지와 소녀 같은 표정이 인상적인 김 크리스틴 선은 "현장을 둘러본 뒤 벽과 바닥, 천장, 유리까지 모두 사용할 수 있는지 먼저 물었다"며 "국립현대미술관과 LG가 내 비전과 아이디어를 믿고 공간 전체를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해줬다"고 말했다.

특히 LG는 작가의 구상에 맞춰 필요한 규모의 OLED를 사실상 제한 없이 지원했다. 그 결과 서울박스를 가득 채운 대형 곡면 OLED 설치가 가능했다.

그는 "최근에는 내 작업을 어디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지, 또 우리 팀이 어디까지 해낼 수 있는지를 시험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미국에서 함께 온 수어 통역사와 함께 진행됐다. 작가의 손짓이 이어질 때마다 통역사의 음성이 곧바로 따라붙었고, 두 사람은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온 동료처럼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김 크리스틴 선은 미국 수어(ASL·American Sign Language)로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그는 수어 통역이나 자막을 통해서만 정보를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농인의 경험을 '메아리(Echo)'에 비유하며, 언어와 소통의 구조를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아왔다.

이번 전시에서 곡면 OLED 스크린은 단순한 영상 장치가 아니다.

작가는 '바위'를 인간이 짊어진 선택과 역사, 책임의 무게를 상징하는 존재로 해석했다.

그는 "관객이 그 무게를 몸으로 느끼길 바랐다"며 "스크린이 머리 위를 덮치는 듯한 형태를 통해 역사의 무게와 인간의 선택이 남긴 결과를 신체적으로 경험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벽과 바닥을 가득 메운 드로잉 역시 하나의 '악보'다.

"벽과 바닥의 드로잉은 악보이고, 스크린 속 애니메이션은 그 악보를 연주하는 것입니다."

관객은 작품 안을 직접 걸으며 선과 움직임, 영상이 하나의 공간적 퍼포먼스로 변하는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작품 제목인 '완고한 바위, 무모한 싸움들'은 갈등과 소모적인 대립이 반복되는 동시대 사회를 은유한다.

작가는 고전 만화의 모션 라인에서 착안한 선과 기호를 서울박스 전체에 펼쳐 언어와 충돌, 번역의 과정을 시각화했다. 드로잉과 영상, 사운드가 서로 호응하며 언어를 움직임과 리듬, 관계로 경험하게 한다.

이번 작업은 작가의 관심이 감각 자체에서 언어와 권력의 문제로 확장됐음을 보여준다.

그는 "예전에는 진동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지금은 '누가 무엇을 말하는가'에 더 관심이 있다"며 "문장과 수어가 움직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말을 하는 주체"라고 말했다.

흑백 중심의 화면에 대해서는 "세상은 나를 위해 설계되지 않았다"며 "음성언어 중심 사회에서 살아오며 가능한 한 흑백처럼 명확하게 말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제는 작가로서 조금은 모호해질 특권도 갖게 됐다"고 덧붙였다.

작업의 출발점도 개인에서 다음 세대로 옮겨가고 있다.

그는 "이제는 더 이상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나의 두 딸이 살아갈 세상이 더 나아질 수 있도록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그것이 내 작업의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고 말했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김 크리스틴 선은 언어와 소리, 접근성과 번역이라는 동시대의 중요한 의제를 독창적인 조형 언어로 확장해 온 작가"라며 "이번 신작은 예술과 기술의 창의적 협업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과 LG전자가 공동 추진하는 'MMCA×LG OLED 시리즈'의 일환으로, 2027년 2월 1일까지 열린다. 관람은 무료.

◎공감언론 뉴시스 hyun@newsi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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