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서원 앞에 점선처럼 긴 줄이... 이건 뭔가요?"

경북 안동 도산서원에는 조선 시대 건축물과 함께 현대식 콘크리트 건물이 하나 있다. 이 건물은 전시관으로 퇴계 이황 선생이 생전에 쓰던 유물과 선생의 일대기를 볼 수 있어 관광객들에게 인기다. 그리고 요즘 같은 폭염 속에는 더욱 그러하다. 바로 에어컨이 가동돼 시원하다.
"지금 이 그림은 옛날 도산서원이지 싶은데, 여기 강 안에 배가 떠 있고, 바위 같은 게 있어요. 또 서원 바로 앞에 점선처럼 긴 줄이 있는데 이건 뭔가요?"
눈썰미가 있는 관광객은 옥진각 입구 벽에 붙어있는 사진의 그림을 보고 이렇게 묻는다. 관광객이 본 그림은 강세황의 '도산서원도'이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이 그림은 조선 영조 때 문인화가 강세황 선생이 도산서원을 그린 것으로 보물로 지정돼 있다.
"이 그림은 1751년에 그렸다고 합니다. 도산서원을 중심으로 낙동강 안에 탁영담(濯纓潭), 반타석(盤陀石) 등이 있고 왼쪽에는 분천서원, 애일당, 분강촌 등 서원과 주변의 모습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분천서원과 애일당, 분강촌 등은 안동댐이 생기면서 다른 곳으로 이전했습니다.
질문하신 바위는 '반타석'이라는 바위이고요. 배가 떠 있는 곳 옆이 '탁영담'입니다. 낙동강이자 안동댐 상류에 해당합니다. 도산서원 그림을 보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지금은 이 반타석과 탁영담을 보기 힘듭니다. 이 그림으로 봐서 예전에는 이곳에도 강물이 많았을 것으로 보여요. 1976년 댐이 생기면서 상류에서 내려온 모래가 도산서원 앞에 쌓이면서 '반타석' 바위와 '탁영담'이 사라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강모래를 어느 정도 파내면 아마 '반타석'이 보일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강을 가로질러 그려진 점선은 '어량(魚梁)'이다. 물고기를 잡는 장치로 물살을 가로막은 뒤 한 군데만 터놓고 거기에 통발 등을 놓아 고기를 잡는다. 이 어량은 조선 시대 백성들이 물놀이하며 물고기를 잡았던 곳일까?
'퇴계 선생 언행록' 속 어량
필자는 이달부터 도산서원 해설사로 근무한다. 도산서원에 대해 해설하는 중간중간에 관광객들은 여러 가지를 질문하며 궁금해한다. 그런데 해설사가 모르는 것을 골라서 질문하는 경향이 있다. 대답이 막힐 때가 많기 때문이다.
공자의 언행을 기록한 <논어>처럼 퇴계 선생의 언행을 제자들이 기록한 책이 있다. <퇴계 선생 언행록>이 그것으로 '어량'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있다.
"도산정사 아래에 어량이 있다. 관에서 심히 엄하게 금지하고 있다. 사람들이 사사로이 고기를 잡을 수 없다. 선생께서 매 음력 유월이 되면 시내가 집에 거하신다. 일찍이 한 번도 이에 다다르지 않았다." - <퇴계 선생 언행록> 처향편
퇴계 제자인 학봉 김성일의 기록이다. 어량은 물고기를 잡는 장치인데 사람들은 고기를 잡을 수 없었다. 관에서 설치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량에서 잡힌 고기는 관청에서 거두어간다. 백성들은 고기를 잡는 부역에 임할 뿐 잡은 고기를 집에 갖고 갈 수 없다. 당시 강에서 잡힌 물고기도 백성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던 모양이다.
"우리가 어릴 때는 저 반타석에서 놀았습니다. 여름철 멱을 감을 때 반타석까지 헤엄쳐 간 다음 바위 위에서 미끄럼을 타고 그야말로 당시 아이들의 '워터 파크'였지요. 지금은 모래에 묻혀 전혀 볼 수 없어 아쉽기만 합니다."
도산서원 전 별유사 이동구 선생의 말이다. 퇴계 후손으로 올해 76세인 선생은 장난꾸러기 시절인 어릴 때 서원 주변 마을에서 살았다. 그래서 여름철에는 낙동강에서 물놀이하며 '반타석'에 올라 장난쳤고, 겨울이면 얼음을 지치다가 '반타석'에서 친구들과 쉬었다고 회고하면서 반타석을 다시 볼 수 있는 날이 왔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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