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환자'가 되면 세상이 이렇게 변합니다
치매는 단순히 기억력에만 문제가 생겨 사람과 장소의 이름을 잊는 질환이 아니다. 치매가 진행될수록 다양한 감각의 변화가 일어나며 멀쩡한 골목길이 휘어 보이고, 익숙한 목소리가 의미 없는 소음처럼 들리며, 향긋한 샴푸 향이 고무 타는 냄새로 느껴질 수 있다. 피부에 살짝 닿는 옷감에도 화들짝 놀라거나, 반대로 뼈가 부러질 정도의 통증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일도 발생한다.
중앙대 의대 핵의학과 손혜주 교수 손혜주 교수는 CBS 경제연구실 유튜브 에 출연해, 치매가 진행되면서 시각·청각·후각·촉각의 세계가 어떻게 변하는지 설명했다. 손 교수는 치매 환자의 이상 행동을 바로잡으려 하기 전에 그들이 살아가는 왜곡된 감각 세계를 이해하고, 질환 단계에 맞게 주거 환경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멀쩡한 골목이 휘고 사람이 순간이동하듯 보여…치매가 바꾸는 시야
치매 환자의 운전이 위험해지는 이유는 단순히 기억력이 떨어져서만이 아니다. 뇌의 변화로 인해 눈앞에 들어오는 장면 자체가 실제와 다르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중증 치매 단계에서는 눈앞의 장면이 훨씬 위협적으로 변할 수 있다. 중심부는 보이지만 주변부가 검게 가려지는 '터널 시야'가 나타나고, 물체가 두 개로 보이는 '이중시'가 생길 수 있다. 반듯한 골목길이 휘어 보이고 서로 다른 물체가 맞닿아 보이기도 한다. 움직임을 연속적으로 처리하는 능력도 떨어진다. 사람이 부드럽게 걸어오는 것이 아니라 한 위치에서 다른 위치로 갑자기 이동하는 것처럼, 장면이 뚝뚝 끊겨 보이는 것이다. 가족에게는 평범한 거실과 복도라도 치매 환자에게는 언제 무엇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공포스러운 공간이 될 수 있다.
소리는 들리는데 말은 안 들린다…난청이 뇌를 지치게 하는 과정
인지기능이 떨어진 초기에는 조용한 방에서는 대화가 가능하지만 사람이 많은 식당에 들어가면 상대방의 말만 골라 듣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여러 소리가 뒤섞인 환경에서 필요한 목소리에 집중하는, 이른바 '칵테일파티 효과'가 약해지는 것이다. 이는 귀로 소리가 들어오지 않는 문제라기보다, 복잡한 소리 중 필요한 정보를 선택하고 해석하는 뇌의 기능이 떨어진 문제에 가깝다. 치매가 더 진행되면 소리는 들리지만,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작은 소리에도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거나,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소리를 듣는 환청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난청이 오게 되면 타인과의 만남을 피하게 되고, 결국 사회적 고립으로 연결돼 뇌의 노화를 더욱 앞당길 수 있다. 청력이 10dB가량 떨어질 때마다 치매 위험이 16% 증가하고, 특히 소음 속에서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유형의 난청은 치매 위험을 최대 60%까지 높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기억보다 먼저 고장 나는 후각
후각은 치매 과정에서 비교적 이른 시기에 변화를 보이는 감각이다. 시각과 청각 정보는 뇌의 중개소 역할을 하는 시상을 거쳐 기억과 관련된 영역으로 전달되지만, 후각 정보는 기억 중추인 해마와 긴밀하게 연결된 경로로 전달된다. 문제는 알츠하이머병과 관련된 변화가 후각을 담당하는 영역에도 이른 시기부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손 교수는 후각의 변화를 치매 위험을 먼저 알리는 '탄광 속 카나리아'에 비유했다. 과거 광부들이 유독가스를 사람보다 먼저 감지하는 카나리아를 갱도에 데려갔듯, 후각 저하가 기억력 변화보다 앞서 뇌의 이상을 알리는 신호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평소 김치찌개를 잘 끓이던 부모님이 갑자기 간을 지나치게 싱겁거나 짜게 맞추고, "요즘 음식 맛이 예전 같지 않다"며 식사량을 줄인다면 단순한 입맛 변화로만 넘겨서는 안 된다. 음식의 풍미는 혀의 미각뿐 아니라 코로 느끼는 후각에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질환이 더 진행되면 실제 냄새와 전혀 다르게 느끼는 '착후각'이 나타날 수 있다. 향긋한 카페라테가 하수구 냄새처럼 느껴지고, 가족의 샴푸 향을 고무 타는 냄새로 받아들이는 식이다. 아무 냄새도 없는 공간에서 타는 냄새가 난다고 호소하는 환후각이 생기기도 한다. 이 때문에 부모님이 갑자기 음식을 거부하거나 특정 방과 장소를 피한다면 이를 고집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가족은 느끼지 못하는 불쾌하고 위협적인 냄새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는 행동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어깨에 손 올렸을 뿐인데 화내는 부모님…성격 변화 아닌 촉각의 자기방어
촉각의 변화는 보행과 일상 행동에도 영향을 준다. 초기에는 발바닥에서 뇌로 전달되는 감각이 둔해지면서 자신의 발과 몸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확신하기 어려워진다. 평평한 바닥에서도 넘어질까 봐 엉거주춤 걷고 발을 조심스럽게 내딛는 이유다. 또 반대로 아주 약한 접촉에 과도하게 놀랄 수 있다. 가족이 뒤에서 어깨에 손을 올렸을 뿐인데 화들짝 놀라며 화를 내는 것이다. 이를 성격이 괴팍해졌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손 교수는 뇌가 예상하지 못한 자극에 과도하게 반응하는 자기방어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치매가 진행되면 손으로 물건을 만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지 못하는 '촉각적 실명'이 나타날 수 있다. 평소에는 가방 속을 보지 않고도 립스틱이나 자동차 열쇠를 찾을 수 있지만, 뇌의 두정엽 기능이 떨어지면 손끝으로 들어온 정보를 물체의 형태로 재구성하지 못한다. 중증 단계에서는 아픔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몸은 통증을 느끼지만 이를 "아프다"고 인식하고 표현하는 뇌 기능이 떨어지는 것이다. 골절이나 맹장염처럼 심각한 문제가 생겨도 통증을 제대로 호소하지 않아 치료 시기를 놓칠 수 있다.
모든 감각이 닫혀도 따뜻한 손길은 남는다
치매 말기가 되면 시각과 청각, 후각과 사물을 식별하는 촉각 기능이 다 약해진다. 그러나 손 교수는 사람의 온기와 정서가 담긴 접촉은 비교적 마지막까지 환자에게 전달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피부를 부드럽게 쓰다듬거나 따뜻하게 손을 잡을 때 발생하는 신호는 전도 속도가 느린 C-촉각 섬유를 통해, 사람 사이의 온기와 감정을 해석하는 뇌 영역으로 전달된다. 다른 감각 기능이 크게 떨어진 뒤에도 "괜찮아", "내가 옆에 있어", "안심해도 돼"라는 의미를 담은 접촉은 환자에게 닿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억이 희미해지고 모든 감각의 문이 하나씩 닫혀가더라도, 가족이 건네는 따뜻한 손길 한 번은 끝까지 닿을 수 있다. 환자가 살아가는 감각 세계를 이해하려는 노력, 그것이 치매 환자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전하는 가장 인간적인 노력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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