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장' 맘껏 퍼주던 어머니, 그 장항아리를 생각합니다

어머니의 장독대에는 늘 크고 작은 항아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거칠고 울퉁불퉁한 대형 장 항아리부터 중간 크기의 된장 항아리, 그리고 귀여운 고추장 항아리까지. 그 사이사이로 오래 묵은 장이 그윽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눈여겨보지 않던 그 장독대가 내 마음 안으로 들어온 것은 어머니가 쓰러지시고 난 뒤였다. 뇌졸중으로 거동이 힘들어진 어머니에게 치매까지 찾아왔고, 결국 요양원에 입원하시게 되었다. 어머니의 물품을 챙기려 찾은 시골집, 주인을 잃은 빈집을 홀로 지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그 장독대였다.
커다란 항아리 뚜껑을 열자 오래 묵은 장 향이 훅 하고 올라왔다. 생각해보면 우리 집 찬장에 장이 떨어질 때 쯤이면 늘 어머니가 먼저 알아채곤 하셨다. 친정만 다녀오면 어머니는 작은 항아리에 된장을 꼭꼭 눌러 담아 건네주셨다.
"친정 장을 그냥 가져다 먹으면 가난해진다"며 꼭 천 원짜리 한 장을 받아 챙기시던 어머니. 그 천 원은 가난을 피하게 하려는 주술이 아니라, 딸에게 미안함 없이 마음껏 장을 퍼주고 싶었던 어머니만의 다정한 핑계였음을 이제는 안다. 어머니의 된장은 동네에서도 소문이 자자했다. 물건을 팔러 오던 이들도 장맛을 칭찬하곤 했는데, 그럴 때면 어머니는 아낌없이 퍼주곤 하셨다.
어머니 없는 시골집 뒤란을 환히 밝히고 있던 장독대. 나는 어머니가 없어 초라해지는 모습이 보기 싫어 처음으로 어머니의 항아리들을 깨끗이 닦았다. 시골 장터에서 어렵게 사 오셨을, 예쁘지도 않고 그저 실용적이기만 한 그 투박한 항아리 피부를 문지르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시조라는 낯선 세계
손주들 책을 대출하러 매주 도서관에 들르는 딸아이에게 "엄마 읽을 만한 시집 몇 권만 빌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딸이 건넨 세 권의 책 중 유독 눈에 들어온 제목이 있었다. 바로 유재영 시인의 시조집 <달항아리 어머니>였다.
'달항아리'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시골집 뒤란에 덩그러니 놓여 있던 어머니의 투박한 장 항아리가 떠올랐다. 학창 시절 수학여행에서나 보았던 백자 달항아리는 당시엔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시집 속 표지에 실린 달항아리의 강렬한 곡선은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어머니의 품처럼 안온하고 편안했다.
사실 시조는 조금 낯설었다. 학창 시절 국어 시간에 배운 것이 전부였고, 왠지 조선 시대에나 쓰였을 법한 옛것이라는 선입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재영 시인은 무려 52년 동안 시조를 쓰며 외길을 걸어온 시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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