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의사 재량" 말했지만…미프진, 이미 처방전 있다
"(투약 가능한 임신 주수를) 몇 주로 할 것이냐 하다가 임기가 끝날 것 같아요.…반드시 몇 주로 해서 입법을 하고 난 다음에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 의사가 재량으로 판단하게 하는거죠. 양심을 믿고.(2026.7.14. 국무회의 중 이재명 대통령 발언)
이재명 대통령이 먹는 임신중지 의약품인 일명 '미프진'의 국내 도입을 더는 미루지 말라고 주문하면서 7년째 공전해온 논의가 다시 시작됐다. 임신중지 권리를 주장해온 여성단체들은 즉각 환영 입장을 밝히면서도 신속한 도입을 위해 의사들이 "재량과 양심"을 발휘할 것을 언급한 것은 오히려 논의를 꼬이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놨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이미 임신중지 진료에 관한 국제 표준 진료지침을 공표한 만큼, 의사들이 아닌 정부가 책임을 지고 국내 가이드라인을 신속히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는 지적이다.
WHO, 임신중지 처방 전부터 사후확인까지 종합 가이드 마련
24일 정부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지난 14일 국무회의에서 임신중지 허용 기간에 대한 입법 논의를 기다리기보다 의사의 판단에 따라 우선 약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 발언 직후 셰어(SHARE) 등 성·재생산권 단체들은 환영 입장을 내면서도 "의사의 재량에 맡기자"는 접근에는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들은 "이미 WHO가 임신중지 의약품 사용에 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두고 있는데도 마치 기준이 없어 의사가 개인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WHO가 2022년 발간한 임신중지 가이드라인(Abortion Care Guideline)은 약물의 용량만 적어 놓은 간단한 권고문이 아니라 ①처방 전 평가부터 ②처방 ③복약지도 ④응급대응 ⑤사후 확인까지 종합적인 진료 흐름을 담고 있다.
가이드라인은 먼저 의료진이 처방에 앞서 임신 여부와 임신 주수를 확인하고, 자궁외임신 가능성과 약물 사용 금기사항을 평가하도록 권고한다. 이후 복용 방법과 예상되는 출혈·통증, 흔한 부작용을 충분히 설명하고, 약물 복용 후 임신중지가 정상적으로 완료됐는지 확인하는 과정까지 하나의 진료 절차로 제시하고 있다.
"12주 미만은 임신부 혼자 주수 확인·복약 가능"
가이드라인은 투약 기준도 매우 구체적으로 담았다. 임신 12주 미만에서는 미페프리스톤 200mg을 복용한 뒤 24~48시간 후 미소프로스톨 800㎍을 투여하는 병용요법을 권고하고, 미페프리스톤을 사용할 수 없을 경우에는 미소프로스톨 단독요법도 가능하다고 명시했다. 필요하면 미소프로스톨을 반복 투여할 수 있으며 최대 횟수도 별도로 제한하지 않았다. WHO는 병용요법이 단독요법보다 효과가 높다는 근거도 함께 제시했다.
특히 12주 미만인 경우 임신부가 의료기관 밖에서 스스로 주수를 확인하고 훈련된 의료인의 직접적 감독 없이도 복용과 경과를 관리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자체 관리의 전제 조건은 정확한 정보와 품질이 보장된 의약품 이용과, 필요한 경우 의료기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다.
사후관리에 관한 지침은 이상 증상이 나타날 경우 언제 의료기관을 찾아야 하는지도 안내하고 있다. 임신 후기 주수의 경우 임신중지가 완료됐는지 확인하는 절차도 의료진의 역할로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촘촘한 가이드라인이 있는데도 수년째 국내 도입이 이뤄지지 않는 데 대해 여성단체들은 "정부가 WHO 권고안을 국내 의료체계에 맞게 적용하면 될 문제를, 의사의 재량 문제로 돌리면서 책임을 의료진에게 넘기고 있다"고 비판하는 상황이다.
의사 책임 부담? "여성 건강권보다 우선인가" 비판도
반면 의료계 일각은 WHO 가이드라인이 있다고 해서 국내에서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반발한다. 국내 의료분쟁이나 응급의료체계, 건강보험, 법적 책임 문제를 고려한 제도정비가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산부인과 의사들은 처방 뒤 과다출혈이나 불완전 임신중지, 응급수술 등이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의사 재량"에 맡기는 것은 의료진에게 모든 부담을 떠넘기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은혜 순천향의대부천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는 전날(23일) 국회에서 열린 '이재명 정부의 낙태약물 무법적 허용의 문제점' 긴급 학술 세미나에서 "WHO는 복용 후 불완전 유산이나 감염, 과다출혈 등 응급상황에 대비해 인근 의료기관과의 연계를 필수로 명시한다"며 "현재 민형사상 부담으로 산부인과 의사들이 분만도 기피하는데 약물 낙태를 할 의사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다만 의료계 내에서도 임신 초기 시점에 빠르게 약물을 사용하는 것이 중기 이후 시술보다 안전하다며 빠른 적용을 촉구하는 등 입장이 엇갈린다. 특히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한 후 7년째 입법 공백 상황에서, 상당수 병원이 임신 주수별로 미소프로스톨 등 의약품 처방과 임신중지 시술을 병행하며 이미 "의사 재량"에 따라 진료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정식 의학회가 아니라 개원의들을 중심으로 미프진 도입 반대 목소리가 크다는 점에서 비급여 임신중지 시술의 이익을 우선하는 것 아닌지 의심될 지경"이라며 "여성 건강권을 고려한다면 101개국에서 허용된 약물 사용을 의사로서 회피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도 "WHO는 미프진이 12주까지는 병원 관찰 필요성도 없고 24주까지는 병원에서 확인 후 귀가하는 정도, 심지어 임신 말기까지도 생물학적으론 부작용이 없다고 보고하는 약물"이라고 안전성을 설명했다.
이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희귀질환에 대해선 신약 허가 허들도 낮추는데 이렇게 안전성이 확인된 임신중지 약물은 불허해 사용법에 대한 논의조차 전개되지 못하게 했다"며 "신속히 진료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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