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윤경호라는 대세
[서울=뉴시스]강주희 기자 = "다시 못 올 행복한 순간이죠. 구름 위에 떠 있는 기분이랄까."
SBS 금토드라마 '김부장'은 유례없는 흥행을 거두며 막을 내렸다. 국내 시청률 수치는 물론 세계 최대 OTT 플랫폼 넷플릭스에서 비영어 TV쇼 3주 연속 정상에 오르는 기록도 세웠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인기의 중심에는 주연을 맡은 배우 윤경호(46)가 있다. 특유의 유쾌함과 무게감으로 작품을 든든하게 받치며 또 하나의 대표작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근에는 한국기업평판연구소 라이징 배우 브랜드 평판에서 '참교육'의 김무열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그야말로 '요즘 대세'다.
지난 27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만난 윤경호는 아직 드라마의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듯 "'김부장' 앓이가 오래 갈 것 같다"고 했다. "너무 감사하게도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한 순간들이 피부로 와닿아서 헤어나기 힘들지도 모르겠어요. 장면을 보고 나면 그때가 생각나고 함께 했던 배우들이 떠오르잖아요. 느낄 수 있을 때 만끽하자 싶은데 저를 다잡으려고요. 지금의 기분이 이어지면 다음 작품을 할 때 스텝이 엉킬 것 같고, 또 사랑받고 싶은 욕심이 찾아올 것 같아 차분하게 시간을 보내면서 스스로를 돌아봤습니다."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김부장'은 북한 공작원 출신 김부장이 납치된 딸을 찾기 위해 정체를 드러내고 싸우는 액션 드라마다. 극 중 윤경호는 김부장(소지섭)의 친구 박진철을 연기했다. 한때 '전장의 신'으로 불린 특수요원이지만, 해병대 준장인 아내 강지영(김지영)에게 쩔쩔매고 무관심한 딸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김부장의 딸 민지가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하자 김부장, 성한수(최대훈)와 함께 구출 작전에 나선다.
그동안 웹툰과 웹소설을 원작으로 둔 작품을 많이 해왔지만 '김부장'은 윤경호에게 많은 고민을 안겼다. "박진철 역할을 맡게 됐을 때 너무 감사했지만 처음에는 이걸 할 수 있을까. 원작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을까 걱정을 했어요. 원작 팬들의 뜨거운 관심을 얼마나 느꼈냐면 중학생인 제 친구 아들이 전화가 와서 '삼촌, 진짜 잘하셔야 해요'라는 거예요. 그 말을 들으니 덜컥 겁이 났어요. 그래도 역할이 주어진 이상 최선을 다해야죠. 원작 인물의 특징을 잘 기억하되 제 안에서 장점을 뽑자는 생각이었어요. 감독님도 저에 대한 확신이 있으셔서 '배우 윤경호'의 장점만 쓰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김부장'의 인기 비결은 단연 액션이다. 윤경호는 타격감 넘치는 박진철의 액션을 구현하기 위해 연극을 하던 시절 배운 복싱을 다시 연습하고, 무술감독을 찾아가 합을 맞췄다. 하지만 박진철의 주먹만큼 강력한 무기는 따로 있다. 바로 잠시도 쉬지 않고 떠드는 수다다. 북한 요원들과 치열한 맨몸 격투를 벌이는 와중에도 농담을 던지고, 천연덕스럽게 말을 이어간다. 이런 박진철의 모습에 팬들은 '수다 액션'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초반에 박진철의 모습은 그냥 안경 쓴 동네 아저씨인데 액션할 때 사람이 너무 돌변해버리면 낯설 수 있잖아요. 그래서 수다스러운 모습으로 박진철의 여유로움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수다스러움이 어떻게 보면 여유로움으로 보일 수 있잖아요. 어디까지 극한을 경험해 본 사람이길래 이런 상황에서도 수다를 떨 수 있는가. 그런 것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김부장'에서 아빠 3인방이 그랬듯이 윤경호는 촬영 내내 소지섭, 최대훈과 한 몸처럼 움직였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실제 친구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누군가 화두를 던지면 그냥 넘기지 않고 셋이 대사를 주고받으면서 신을 살렸던 순간이 많았어요. 감독님도 '정말 친구 같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그 부분에 굉장히 공감했어요. 과거 산전수전을 겪은 이들의 우정이 얼마나 깊은지 제스처 하나에도 묻어날 수 있도록 표현에 신경을 썼어요. 그러면서 척척 호흡이 맞았던 것 같아요."
이런 신뢰를 바탕으로 세 사람은 매 장면을 치밀하게 연구하고 재치 있게 풀어냈다. 덕분에 현장에는 늘 아이디어와 애드리브가 넘쳤다. "소지섭 선배님은 '나는 진지한 캐릭터이니 너희가 해줘'라고 하시면서 계속 뭘 갖고 오세요. 민지를 찾으러 갈 때 3인방이 방지턱에서 꿀렁하는 장면도 선배님의 아이디어예요. 순발력이 좋으시고 포인트도 잘 짚으시죠. 최대훈 배우는 정말 나노미터로 섬세해서 애드리브를 가장 많이 준비했어요. 저는 거들기만 했는데 그들 안에서 같이 어우러질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진짜 행복했습니다."
윤경호는 올해로 데뷔 27년 차이지만, 배우로 주목받은 지는 불과 몇 년이 되지 않는다.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각인되기 시작한 건 드라마 '도깨비'(2016)에서 김신의 부하 김우식 역을 맡으면서다. 그사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연기를 병행했고, 단역과 조연, 특별출연도 가리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의 필모그래피에는 성실함이 묻어있다. '지금이 배우 인생의 전성기가 아니냐"고 묻자 윤경호는 "복이라는 게 있고 행운이라는 게 찾아온다면 지금이 그 시기인 것 같다"고 답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저 역시 연기를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바닥을 칠 때도 있었는데 잘 버티니 이렇게 웃을 날이 온다는 것을 몸소 실감하고 있어요. 제가 산증인으로서 부디 모든 사람들에게 그런 순간들이 꼭 찾아왔으면 좋겠어요." 긴 시간 끝에 마주한 지금의 자리. 27년 전 연기를 막 시작했던 그가 그렸던 미래와 얼마나 닮아있을지가 문득 궁금해졌다. 잠시 생각에 잠긴 윤경호는 "상상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는 것 같다"며 20대 때 꿨던 꿈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런 꿈을 한 번 꿨어요. 호프집에 최민식, 송강호, 한석규, 황정민 선배님들이 들어가시는데 저도 일행처럼 같이 들어가요. 정말 그분들 사이에 자리할 수 있다면. 깨고 나서 얼마나 그랬는지 몰라요. 근데 비슷한 경험을 실제로 한 적이 있어요. 설경구 선배님과 조인성, 진선규, 유재명, 박병은 배우와 한 자리에서 시간을 보낼 기회가 있었는데 그 꿈이 생각나서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어요. 너무 감격스럽잖아요. 이런 자리를 꿈꿨었는데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게 믿기지 않았어요. 저는 그때 제 꿈을 실현했던 것 같아요."
'김부장'은 인기에 힘입어 시즌2 제작을 논의 중이다. 윤경호는 당연히 출연 욕심이 있다. 많은 사랑을 받은 만큼 더 보여주고 싶은 게 많다. 지금보다 더 좋은 피지컬로 강도 높은 액션신을 소화하고 싶고, 박진철의 아내로 특별출연했던 김지영과의 서사도 그리고 싶다. 현재의 자신이 어느 때보다 '넓어졌다'는 명쾌한 설명에 자신감이 읽혔다. "무명의 윤경호는 기대치가 없어서 새로운 걸 보여드릴 수 없어요. 수다스럽고 익살스러운 게 디폴트 값이 된 지금 또다른 도전의 장이열렸다고 생각해요. 제가 좋아하는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처럼 스스로 이미지를 잘 활용하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공감언론 뉴시스 zooey@newsi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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