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뜩하다" 갈등관리 전문가가 본 영화 <호프>

나홍진 감독의 영화 <호프>(HOPE, 2026)는 비무장지대와 멀지 않은 가상의 시골 마을 호포항에서 시작된다. 어느 날 마을 외곽에서 처참하게 훼손된 가축이 발견되고, 주민들 사이에서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퍼진다. 호포항 파출소장 '범석'은 부하 경찰 '성애'와 함께 현장을 조사하고, 혈기 왕성한 주민 '성기'는 사냥꾼들을 이끌고 숲으로 들어간다.
아직 주민들은 자기들이 무엇과 맞닥뜨렸는지 알지 못한다. 그들이 아는 것은 가축과 사람이 죽었고, 마을의 일상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공포는 빠르게 무장을 부르고, 무장은 다시 처참한 공격을 불러온다. 생존을 위해 벌이는 주민들의 필사적인 저항은 마을을 지키려는 영웅적 투쟁처럼 보이지만, 영화는 시점을 비틀어 그 저항이 상대에게 어떻게 해석되는지 보여준다.
낯선 침입자의 움직임은 사실 실종된 외계 문명의 황태자를 구출하기 위한 절박한 몸부림이자 문명의 생존을 위한 사투였다. 그러나 문제는 외계인들의 거칠고 파괴적인 이 행동이 주민들에게 무차별적인 공격으로 해석되었다는 점이다.
반대로 주민들의 방어적 행동은 외계인들에게 무자비한 적대로 읽힌다. 양쪽 모두 상대의 진의를 알지 못한 채, 자신의 공포와 절박함을 상대의 악의로 해석한다. 이처럼 낯섦은 위협이 되고, 위협은 적대를 부르며, 적대는 자신이 처음 품었던 공포가 옳았다는 증거를 스스로 만들어내며 그렇게 갈등은 자기충족적 예언이 된다.
아비투스와 호포항의 비극
서로의 의도가 차폐된 채 파국으로 치닫는 대칭적 구도를 해체하는 데 유용한 학술적 렌즈 가운데 하나는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주장한 아비투스(habitus) 개념이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매 순간 모든 가능성을 합리적으로 계산하며 행동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온 사회적 환경과 조건 속에서 형성된 지속적인 사고와 행동의 습관, 곧 아비투스에 따라 상황을 이해하고 행동한다. 그리고 그 행동은 각기 다른 규칙과 권력관계가 작동하는 삶의 영역, 즉 구체적인 활동의 장(field) 안에서 발현하며 현실적인 의미를 획득한다(Bourdieu, 1980).
호포항의 비극만 봐도 그렇다. 이 비극은 단순한 문화 차이를 넘어 서로 다른 세계(장)에서 형성된 아비투스가 아무런 번역 장치 없이 갑자기 같은 공간에 동시에 내던져지면서 발생한 구조적 충돌이라는 게 더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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