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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이라 쓰고 '대출'이라 읽는다"…벼랑 끝 상인에게 '그림의 떡'

노컷뉴스

▶ 글 싣는 순서 ①"창업도 빚, 폐업도 빚"…대출에 갇힌 소상공인들
②"지원이라 쓰고 대출이라 읽는다"…벼랑 끝 상인에게 '그림의 떡'
(계속)
정부와 지자체가 소상공인을 살리겠다며 경쟁적으로 내놓은 지원책들이 정작 벼랑 끝에 몰린 영세 상인들에겐 손에 닿지 않는 '그림의 떡'에 그치고 있다.
 
원가 폭등으로 속은 적자인데 총매출만 따지는 비현실적인 기준과 까다로운 금융권 문턱 탓에 당장 수혈이 시급한 이들은 사각지대로 내몰린다.
 
14일 CBS노컷뉴스가 정부와 수도권 지자체가 제공하는 자영업자·소상공인 지원 정책 54개를 전수 조사해 분석한 결과 자영업자가 실제 융자를 받거나 혜택을 보기 위해서는 최소 12개에 달하는 행정·금융 창구를 넘나들어야 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소상공인24, 기업마당 등 통합 채널부터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지역 신용보증재단, 신용회복위원회 등 융자와 보증, 채무조정 기관들이 미로처럼 얽혀있기 때문이다.
 
힘들게 문턱을 넘어도 대책은 '빚'에 편중돼 있다. 이번 전수 조사 대상인 54개 사업 가운데 소상공인이 쓰고 안 갚아도 되는 직접적인 현금성·바우처 지원은 단 7개(13%)에 불과했다. 반면 지원 사업 10개 중 7개꼴인 나머지 사업들은 결국 자영업자가 추후 이자를 보태 갚아야 하는 대출이거나 보증 형태였다.

'빚에서 또 다른 빚으로' 악순환…이중 심사에 거절 일쑤실제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한 소상공인들의 자금 흐름을 들여다보면 창업 초기 적자를 메우기 위한 은행권 대출에서 시작해 카드론, 정책대출, 지인 차용을 거쳐 채무조정 신청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원 구조는 복잡하지만 실제 방식은 '빚에서 또 다른 빚으로' 넘어가는 단선적 흐름이다.
 
이마저도 행정 편의주의적인 이중 심사 구조 탓에 현장 체감도가 낮다. 신용보증재단 등에서 심사를 거쳐 보증서를 발급받아도 연 1.5% 안팎의 보증료를 별도로 부담해야 한다. 더욱이 최종 재원을 집행하는 시중은행이 자체 심사를 이유로 보증액 이하로 대출을 감액하거나 거절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가평에서 16년째 숙박업을 운영하는 김모(40대)씨는 관광 정책자금 지원 대상에 선정됐으나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해 단 한 푼도 빌리지 못했다. 김씨는 "정부 사업에 선정돼도 은행 심사에서 막히면 끝"이라며 "어려운 사람일수록 지원을 받기 더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가장 절박한 사람일수록 높은 문턱…현실 외면한 '매출 기준'이처럼 현행 체계는 가장 지원이 절박한 사람일수록 오히려 접근 문턱이 더 높은 모순을 안고 있다. 금융 취약층이나 다중채무자, 혹은 폐업을 앞둔 한계 상인들을 위한 사업일수록 까다로운 행정 조건이 발목을 잡는다.
 
일률적인 매출 기준도 현장 실태와 어긋난다. 주요 정책자금과 경영안정 바우처의 수혜 기준은 대개 '연 매출 1억 400만 원 미만'이다. 원재료비와 인건비, 임대료가 폭등한 상황에서 영업이익이 아닌 총매출만을 기준으로 삼다 보니 '속은 적자'인 점포들이 대거 자격을 잃는다.
 
용인 대학가에서 퓨전음식점을 운영하는 박모(40대)씨는 2024년 말 계엄 사태 이후 월매출이 3분의 1토막인 800만 원대로 가라앉았다. 사채까지 써 가며 부채가 불어났지만 기존 연 매출이 기준을 넘겼다는 이유로 경영안정 바우처 지원은 거절당했다. 박씨는 "원가를 빼면 고스란히 적자인데 폐업을 하려 해도 철거비 등으로 빚을 더 내야 하는 처지"라고 토로했다.
 
이 같은 융자 중심 대책은 빚 없이 성실하게 버티는 영세상인들을 오히려 소외시킨다. 수원 행궁동에서 11년째 육포가게를 운영하는 김모(60대)씨는 원재료비가 2배 폭등했음에도 "빚지고 살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적금을 깨고 1인 영업으로 버텨왔다. 정부의 대책이 무부채 영세 상인의 실질적 고통에는 차단막이 되지 못함을 보여준다.
 

자영업 연체율 10년 만에 최고치…통계의 경고정부가 고집해 온 대출 중심 지원의 부작용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KDI(한국개발연구원)의 '자영업에 대한 종합적 분석과 정책제언(2020)' 보고서를 보면 폐업 사업체 중 정책금융 수혜업체는 비수혜업체보다 폐업 전후 신용점수가 평균 63.75점 더 하락했고 부채상환부담(DSR)은 0.418%p 더 증가했다. 정책금융이 폐업 국면에서는 오히려 깊은 부채 늪에 빠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한 셈이다.
 
부실 징후는 이미 구체적인 지표로 가시화됐다. 지난해 11월 국회미래연구원이 발간한 '자영업 시장의 구조적 전환과 정책적 과제' 연구보고서를 보면 전체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은 2020년 1분기 0.87%에서 지난해 1분기 1.88%로 두 배 넘게 뛰었다. 특히 다중채무자이거나 저신용·저소득층인 '취약 자영업자'의 연체율은 12.24%에 달해 사실상 한계 상황에 다다랐음을 보여준다.
 
시중은행 창구의 지표 역시 위험 수위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5월 말 기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중소기업 및 소호대출 원화 연체율 평균값은 0.73%로, 전월(0.65%) 대비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일부 시중은행의 경우 자영업자 연체율이 최고 0.86%까지 치솟으며 2016년 중순 이후 약 1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막혀버린 퇴로…채권 매각 시차에 구제책 무력화위기에 직면한 상인들이 문을 닫는 퇴로마저 촘촘한 행정 문턱과 구조적 모순에 막혀 있다. 정부가 최대 600만 원 수준의 폐업 지원 제도를 운영 중이지만 선불이 아닌 후불 지급 방식이라 당장 철거비나 임대료를 마련해야 하는 자영업자에겐 실효성이 떨어진다. 버텨도 대출, 문을 닫으려 해도 빚을 내야 하는 막다른 골목이다.
 
여기에 정부의 채무조정 제도와 금융사의 자산 회수 속도 간의 시차는 또 다른 사각지대를 만든다. 카드사 등 민간 금융사가 부실 채권을 대부업체에 빠르게 매각해 버리면 정부의 채무조정(새출발기금) 협상 대상에서 제외돼 구제책이 무력화되기 때문이다.
 
수원 파장동에서 11년째 고깃집을 하는 방모(50대)씨의 한탄은 이 같은 자영업자의 절박한 현실을 압축해 보여준다. 방 씨는 코로나19 시기 이미 폐업을 고민했지만 대출금 일시에 상환해야 처리가 되는 조건과 철거 비용 탓에 정리를 미뤘고 그사이 총부채는 1억 원으로 늘어났다. 뒤늦게 새출발기금 신청을 검토했으나 카드사 채권 일부는 이미 대부업체로 넘어가 조정조차 불가능해진 상태였다.
 
방씨는 "문을 닫으려 해도 당장 갚을 돈과 철거비가 없어서 꾸역꾸역 버텼는데 결국 돌아온 건 대부업체의 빚 독촉과 막혀버린 구제의 길뿐이었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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